토요일 아침
토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베트남을 떠날 날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지오네는 오늘도 호치민시의 예전 모습들을 들여다 보기 위한 탐방을 나섰습니다.
요사이 우기로 접어들고 있는 호치민시는 하루에 한 번 정도 비가 주루룩 내리고는 하는 날씨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늘은 약간 흐립니다.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탐방 다니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짐을 한국으로 다 보내버린 지오네는 아침식사 대신 믹스커피를 한 잔씩 타마시고 호치민 시내로 탐방을 나섰습니다.
농업회의소 건물
오늘의 첫 방문지는 프랑스 식민시절 차세루-루바 거리(rue Chasseloup-Laubat)와 마시지 거리(rue de Massiges)들이 만나는 곳
그러니까 현재의 응웬 티 민 카이(Nguyễn Thị Minh Khai)거리와 막딘치(Mạc Đĩnh Chi)거리가 만나는 곳입니다.
이곳은 프랑스 식민시절에 농업회의소(La Chambre d'Agriculture) 건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흔적이 없고 레지던스이자 호텔인 섬머셋 챈슬러 코트 (Somerset Chancellor Court)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네네 지오네 집 근처입니다. 일단은 집 근처 장소에서 오늘의 탐방을 시작합니다.
일본풍 주택 냐 고 꽌 (Nhà Gỗ Quán)
지오네 집 근처 응웬 티 민 카이 거리 64번지 (64 Nguyễn Thị Minh Khai)에는 왠지 왜색이 짙은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냐 고 꽌(Nhà Gỗ Quán)이라는 음식점입니다.
처음 봤을 때 ‘으음 베트남 건물인데 왠지 일본 냄새가 나네’ 하고 생각했더랬죠 ^^;;
알아보니 이 건물은 역시나 일본이 베트남을 점령하고 있을 당시에 일본풍으로 지어진 목조주택입니다.
일본은 1943.9월부터 1945.3월까지 베트남을 점령했었죠.
당시는 이 길이 홍 탑 뚜(Hồng Thập Tự)거리라고 불려졌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당시에 무슨 용도의 건물로 지어졌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거북이 호수
지금은 거북이 호수(Hồ Con Rùa)라고 불리는 이곳은 프랑스 식민 이전 시절에는
1790년 건설된 사이공 쟈딘(Gia Định)성의 2개의 북쪽 문중에 하나인 봉 쿠옛(Vọng Khuyết)이 있던 장소입니다.
이후 1835년 성이 파괴되고 현재의 길들이 만들어졌고,
1877년 노틀담 성당 기초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우연히 이 곳에서 지하수층을 발견하자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곳에 최초의 급수탑(Château d’eau)을 건설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이 장소는 급수탑 원형교차로 (Rond-point du Château d’eau)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곳이 거북이 호수가 된 이유는 이 곳이 풍수지리적으로 용의 꼬리에 해당되는 곳인데
용의 머리 (지금의 통일궁)이 만들어낸 복을 용의 꼬리가 파괴할 수 있다하여,
꼬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칼 모양의 탑을 만들어 고정을 하고 거북이상을 세워서 꼬리를 눌렀다고 합니다.
현재는 이 거북이 상은 없어졌고, 로타리 가운데 있는 공원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사이공 급수탑
현재 보 반 탄 거리 (1 Võ Văn Tần)에 있는 사이공 물 관리 회사 (Sài Gòn Water Corporation, SAWACO) 빌딩 안에는 급수탑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급수탑은 1921년 있는 사이공 상수도국(Usine des Eaux de Saigon)이 거북이 호수 (Hồ Con Rùa)에 있었던 첫번째 급수탑을 허물고
기존의 급수탑보다 큰 규모로 건설했던 급수탑 2호(Chateau d'eau 2)랍니다.
다른 식민시절 건물들과는 달리 이 급수탑은 사이공 물관리 회사 (SAWACO)에서 문화유산으로 선언하여서 보존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뭔가 개조는 이루어지지 않고 건물들 뒤쪽에 있어서 보반탄(Vo Van Than), 파스터(Pasteur),
응웬티민카이(Nguyen Thi Minh Khai)거리를 빙빙돌면 잠깐씩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이공 노틀담 성당
급수탑을 떠나 간 곳은 호치민시 관광의 시작점인 사이공 노틀담 성당 (Notre Dame Cathedral of Saigon)입니다.
뭐 호치민에서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참고로 정식 명칭은 사이공 성모 성당 (Nhà Thờ Đức Bà Sài Gòn) 입니다.
- 주소 : 01 Công Xã Paris, Quận 1, Hồ Chí Minh
이 성당은 죠르쥬 헤르미테(Georges l’Hermitte)가 디자인과 건축을 하였는데,
차너 대로 (Boulevard Charner, 현재의 응웬 후에Nguyen Hue 거리)에 있었던 초기 목제 성당을 교체하기 위해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1880.4.11일에 당시 코친차이나(베트남)의 총독인 샤르 르 미에 드 빌러스(Charles Le Myre de Vilers)와
주교인 이지돌 쿨롬베(Isidore Colombert)가 참석한 가운데 낙성식을 했답니다.
지금은 보수 중으로 아마도 몇 년은 지나야 원래의 모습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원래 건축할 때에도 모든 재료가 프랑스에서 온 것처럼 이번 보수하는 재료들도 모두 프랑스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사이공 중앙 우체국
노틀담 성당과 함께 시내관광의 한 축을 이루는 사이공 중앙 우체국(Bưu Điện Trung Tâm Thành Phố)이 성당 길 건너에 있습니다.
- 주소 : 125 Công Xã Paris, Bến Nghé, Quận 1, Hồ Chí Minh
이 우체국은 프랑스 식민시절인 1886-1891년 사이에 건설이 되었는데,
기존 식민군 사령부 (Commandant des troupes)가 있던 자리에 건축되었습니다.
설계는 건축가인 알프레드 플훅(Alfred Foulhoux)과 앙리 빌쥬(Henri Vildieu)가 맡았다고 합니다.
건물은 고딕, 르네상스 및 프랑스 식민지풍이 섞인 형태라고 합니다.
안쪽에 들어가보면 2개의 큰 지도가 있는데, 이 우체국이 건설되고 바로 설치가 된 지도들입니다.
왼쪽 지도는 ‘Lignes telegraphiques du Sud Vietnam et Cambodge 1892’라는 제목의 지도로
‘1892년 베트남 남부와 캄보디아 전신선도’라는 뜻입니다.
오른쪽 지도의 제목은 ‘Saigon et ses environs 1892’로 ‘1892년 사이공과 그 주변지역도’ 라는 뜻입니다.
호치민 시민극장
우체국을 나와서 동커이 거리를 슬슬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다다른 곳이 오페라 극장이라고 불리는 호치민 시민극장 (Nhà hát Thành Phố) 입니다.
- 주소 : 7 Công Trường Lam Sơn, Bến Nghé, Quận 1, Hồ Chí Minh, Vietnam
예전 프랑스 식민시절에 지금 캬라벨 호텔 자리에 나무로 지어진 극장이 있었는데, 이 극장을 허물고 지금의 자리에 극장을 세웠답니다.
이 후 1950년대 국회건물, 1970년대 하원건물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부터 다시 극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998년에 프랑스의 도움으로 현재의 건물 앞쪽면 장식 그러니까 천사들이랄지 여신이라들이랄지 등이 다시 설치됩니다.
동커이 거리 상가건물들
극장을 떠나서 조금 걸어 가서 만난 곳은 동커이에서 만난 상가건물들입니다.
이 건물들의 위치는 1870년대에 지어졌던 그랑 오뗄 데 프랑스(Grand Hôtel de France) 위치에 지어졌습니다.
식민시절이 끝나갈 무렵부터 윗층은 아파트로 아래층은 가게들로 사용되었죠.
언듯보면 지저분해 보이지만 외관과 계단을 보면 특이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요사이 호치민에서 이전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이 건물들이 언제까지 있어줄지 궁금합니다.
노말 약국 자리
상가거리를 조금 지나서 걸어가면 예전 그러니까 프랑스 식민시절의 약국
그러니까 La Pharmacie Normal이라는 약국 건물이 나옵니다.
- 1930년대 당시 주소 : 119-121-123 rue Catinat
이제는 예전 건물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아주 일부 2층 모습에서 예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미레 호텔자리
동커이 거리와 만나는 응웬 티엡 (Nguyễn Thiệp) 거리를 따라서 걸어가다가 보면,
이전에 로얄(Royal)호텔로 불렸다가 다시 미레(Mỹ Lệ) 호텔로 이름을 바꿨던 건물이
응웬 후에(Nguyễn Huệ) 거리와 응웬 티엡 (Nguyễn Thiệp) 거리가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요사이는 뭐랄까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면 무언가 작은 호텔을 만들고 싶은 것 같은데 아무 것도 아닌 그냥 빈 건물입니다.
뭐 요사이 호치민시 개발상황을 살펴보면 조만간 새로운 가게로 거듭나거나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것 같습니다.
가브리엘 오귀스트 파울루센의 스튜디오
미레 호텔 자리였던 건물을 떠나서 사이공강쪽으로 응웬후에 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1920년대에 이 자리에 스튜디오를 열고 당시 사이공에서 활동한 사진작가인
가브리엘 오귀스트 파울루센(Gabriel Auguste Paullussen)의 스튜디오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의 스튜디오는 당시 차너 대로 (10 boulevard Charner) 그러니까 현대의 응웬 후에 거리(10 Nguyễn Huê)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시 흔적이 보이지는 않네요. 가게들이 있었습니다.
사이공 재무부 (Le Trésor à Saigon) 건물
가브리엘 오귀스트 파울루센 스튜디오 길 건너면에는 재무부 건물이 있습니다.
프랑스 식민시절부터 이 건물은 Le Trésor à Saigon 즉 사이공 재무부 건물이었고, 지금도 재무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주소 : 37 Nguyễn Huệ, Quận 1, Hồ Chí Minh
어짜피 들어가보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문이 슬쩍 열려있더군요. 한 번 들어가볼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네네, 이럴 때는 소심한 지오네죠 ^^;;;;
함니거리 32번지 건물
함니거리 32번지에 있는 이 건물은 1925-1926년에 1920년대에 외교관 출신 백만장자인 Octave Homberg (1876-1941)가 소유한
큰 지주회사였던 프랑스 및 프랑스 식민지 회사 (Société financière française et coloniale, SFFC)의 본사 건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 당시 주소 : 32 boulevard de la Somme
- 현재 주소 : 32 Hàm Nghi, Bến Nghé, Quận 1, Hồ Chí Minh
이 회사는 1929년 경제위기 이전까지 주로 농업, 임산, 광산, 신용보증 등의 사업을 하는
30여개의 자회사를 가지고 있었던 자본금은 3천만 프랑인 큰 회사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SFFC는 경제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고,
1930년 프랑스 수상의 도움으로 겨우 파산위기를 벗어난 후 사업 축소를 했습니다.
1939년 이 건물은 Banque Franco-Chinoise pour le commerce et l’industrie (BFC)에 매각됩니다.
현재 건물에 있는 BFC 로고와 철문의 장식들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이죠.
BFC는 이 건물을 1975년까지 사용하다가 통일이 되고 나서 이 건물은 농업부를 포함한 다양한 단체가 사용하다가,
1997년부터 현재까지 메콩 주택 은행 (Mekong Housing Bank, MHB)의 본사건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루머에 의하면 이 자리에 40층 짜리 빌딩이 건설될 것이라고 하네요.
최초 미국 대사관 건물
길 건너를 바라보면 함니(Ham Nghi)와 호 뚱 마오(Ho Tung Mau) 거리에 있는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사이공 최초의 미국대사관 건물이었습니다.
- 주소 : 39 Hàm Nghi, Quận 1, Hồ Chí Minh
1950년대에 대사관으로 사용되었다가 1965.5.30일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을 하게되자,
미국은 보안에 취약했던 이 건물을 떠나서 대사관을 현재 있는 레쥬안(Le Duan) 거리로 옮겨졌고,
이 건물은 1975년까지 미국 대사관 별관으로 사용되었답니다.
현재는 호치민시 은행대학교(Trường Đại học Ngân hàng Tp. Hồ Chí Minh)의 건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이공 강가의 깃대 - 초장기 스토리
함니거리를 지나서 오늘의 마지막 장소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호치민시의 사이공 강가를 걷다가 보면 꼭 배의 돛대 같은 모양의 깃대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은 베트남 말로 꼿 꼬 투 우 (Cột cờ thủ ngữ)로,
예전 프랑스 식민시절에 mât des signaux 즉 신호 깃대라고 불렸던 녀석입니다.
이 깃대는 1865.10월에 1860년대 코친차이나 주둔 프랑스 해군 장교였던
로렌-조젭 레쥰(Laurent-Joseph Lejeune, 1817-1895)이라는 사람이
사이공강과 아로요 씨누아(Arroyo Chinois, 현재의 벤에 Bến Nghé 수로)가 만나는 곳에 세운 상징물입니다.
원래는 단순하게 생긴 깃대로 강을 지나는 배들에게 정보를 줄 목적으로 세워졌고,
이 후 캡 생 자크 (Cap Saint-Jacques, 현재의 붕타우 Vũng Tàu)에서 전보로 보내오는
정기 화물선의 도착, 적군의 침입등의 정보를 식민지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초기부터 이 깃대는 식민지 거주민들에게 오락의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5시에 이 곳에서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사이공 강가의 깃대 - 1800년대말부터 현재
1894년이 되자 깃대가 오래되어 새로운 깃대 건설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1900년까지 예산상의 문제로 실제 건설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무렵 깃대 근처를 농담꾼들의 포인트 (Pointe des blagueurs)라고 불렸는데,
저녁이 되면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저녁을 마치고 지나가는 배들을 바라보기 위해 이 곳으로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1920년대부터 깃대 아래에 있는 건물은 민간에게 빌려줘서 바로 사용됩니다.
1945.9.23일 이 곳에서는 지역 레지스탕스와 인도 영국군간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일본군이 물러간 후 프랑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중에 생긴 전투였습니다.
2010년에 이 곳을 개보수해서 전시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역시나 진행은 잘 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네네, 별 것 없지요.
하지만이 곳에서 바라보는 사이공강과 강을 떠다니는 배들의 모습은 뭐랄까 ‘사이공의 전형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당분간 마지막 탐방
사이공강에 깃대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탐방이 끝이 났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다다음주에 사이공을 떠나는 지오네가 이런 식의 사이공 탐방을 다시 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사이공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이 도시에 녹아있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기에 좋은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아직은 덜 정리되었고, 관리도 잘 되고 있지 않으며, 개발을 핑계로 예전에 많은 것들을 부셔대는
이 도시의 거리들이 사랑스러워진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이 도시에 돌아오면 얼마나 많은 변화들이 있을까요.
뭐 그 시간도 기대를 해보면서, 당분간 마지막이 된 탐방을 마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