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8.15.
눈치가 빠른 분들을 눈치를 채셨겠지만,
우리가족은 뭔가 특별할 게 없는 그런 평범한 가족입니다 -_-;;
그래도 이런 평범한 가족이 만들어낸 블로그에 놀러오셨으니 저희 가족 소개를 합지요.
먼저 가족구성을 살펴보면,
가장이자 아부지이자 남편인 지오아빠는
석유회사(정확히는 가스회사져)에 다니면서 인생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없을까 늘 꿈을 꾸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샐러리맨입니다.
그리고 안주인이자 부인이자 엄마인 지오엄마는
전업주부로 역시나 인생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없을까 늘 꿈을 꾸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줌마입니다.
이들 둘 사이의 사랑의 결실인 지오도
역시나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늘 편한 인생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청년이자 영국 샐러리맨이죠.
그리고 얼마 전에 가족의 일원이 된 크세니아는
영국에서 나름 열심히 일을 하는 샐러리맨입니다.
이렇게 4명의 구성원인 우리가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는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각자 살다가 가족이 되다!!
때는 민주화 물결이 강하게 반독재 항거라는 물결로 흐른 1987년 (386세대들은 87항쟁이라 합니다) 다음 해인
1988년도 순전히 여학생들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울의 반대쪽에 있는 써클 (네네 당시는 동아리라는 표현이 없었습니다)을 선택한 지오아빠는 그 곳에 절대로 신앙적인 이유로 이 써클을 선택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지오엄마를 만납니다.
우연히 만난 이 두 사람은 (두 사람의 목표가 같았다 혹은 목적을 달성했다고도 할 수 있죠 -_-;;)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히히덕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이들 둘의 관계는 별다른 변화 없이 1996년까지 진행이 됩니다.
뭐 영화나 미니시리즈였다면 이 정도 기간에 수 많은 총격씬과 살인, 부정, 타락, 정사씬 (부끄~) 등등이 있었겠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우리 가족은 아주 평범한 가족입니다. -_-a
그러다가 1996년이 도래한거죠.
지오네가 살았던 베트남에서 1975년(해방)과 1986년(도이모이)이 중요한 해인 것처럼 지오네 가족에게는 이 해가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뭐 별건 아니고 10월 26일 추운 가을날에 결혼을 한 겁니다.
쑥스~ (참고로 신혼여행은 사이판이이었습니다)
드디어 '가족'이라는 단위로 구성이 된거죠.
이들 둘은 10.7평짜리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방앗간 골목 막다른 집 다세대 성경이네 옆집인 202호에서 처음으로 살림이란 것을 시작합니다.
녹번동 시대와 지오의 탄생
그리고 1998년 3월에 지오가 태어납니다.
지오가 태어남으로 인해서 이제 아빠-엄마-아들이라는 어디 내놔도 당당한(?) 대한민국의 중산층 가정이 됩니다.
지오네 집은 지오가 돌을 지낼 때까지 덥고, 비가 새고, 시끄럽고, 회사도 열라 멀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넘 좋은
녹번동의 어느 막다른 골목집에서 살 게 됩니다.
산본 신도시의 삶
이렇게 녹번동에서 살던 지오네 집의 일대 변화는 드디어 지오아빠가
"아~ 쒸~ 회사 넘 멀어!!!"
라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면서 심각하게 이사를 고려하게 되고, 드디어 있는 돈을 박박 긁고 회사에서 융자를 얻어 평생 살아온 서울을 떠나 12년된 르망을 당당히 몰고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가장 높은 산본 8단지 그 중 가장 높은 21층 19평 주공 아파트로 이사를 갑니다.
드디어 소위 신도시 라이프가 시작된 겁니다.
이제는 재래시장보다는 이마트를, 골목 떡볶기집 보다는 중심상가를 사용하게 된 거죠.
산본에서의 삶은 한 마디로 하자면,
'전형적인 한국적인 삶을 답습하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지오아빠는 어느날 동작대교에서 완전히 정지를 해 버린 오래된 르망을 폐차 처분하고, 아는 사람을 통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너무나 평범무쌍한 은회색의 1500cc DOHC 아반테를 구입합니다.
지오엄마는 더 이상 왠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자식과 돈버는 것에 연연하는 아줌마로 착실히 발판을 밟아갑니다.
지오는 무럭무럭 신도시 아이로 자라납니다.
그리고 지오네 가족은 아이엠에프의 혼란을 틈타 회사에서 융자를 더 받아가지고 일발필살의 각오로 하산을 시도해서 지하철역 근처 24평 6단지 아파트로 이사를 합니다.
뭐 밤에 방바닥에 누우면
'어이고 반은 빚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하철 역도 가깝고, 중심상가도 가깝고, 재테크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딴은 별로 다른게 없는 신도시 라이프를 즐기고 살아가게 됩니다.
영국 에그햄에 살게되다!!
여기까지 보면 결국
'이 가족은 일생동안 서울 주변 신도시에서 아파트 평수와 차 크기만 늘이다가 죽었습니다'
라고 쓰면 간단하게 될 인생이었는데,
2001년 어느 날 문득 지오아빠가 선진신기술 습득을 위한 장기 해외연수라는 거창한 제목의 프로그램에 선발이 됩니다.
그렇게 지오네 가족은 차 팔고 집 세주고 짐을 주섬주섬 싸가지고 영국으로 날아갑니다.
덕분에 지오아빠는 늙으막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지오 엄마는 인생에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지오는 엉겁결에 영국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지오네가 살던곳은 영국 서리주 러니미드군 에그햄시에 있는 학교 기숙사였습니다.
엄청나게 춥고, 좁고, 후줄근하고, 밤이면 심심할까봐 화재경보(fire alarm)가 울어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만,
지오네 가족은 안되는 영어와 빈곤한 연수비에도 굴하지 않고 7년된 폴크스바겐 골프를 몰고서 여기 저기 여행을 다닙니다 (여행기들을 참고해주세요).
영국의 삶은 지오네 가족에게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우선 지오는 '암거나 다 잘먹게'됩니다. 그저 영국 교육이 놀라울 뿐입니다.
지오엄마는 '영어 못해도 수다는 떨 수 있다'라는 엄청난 사실을 터득합니다.
지오아빠는 '역시 공부는 체질이 아니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얻게 됩니다 -_-;;;
처음엔 황당하기만 했던 영국생활이 이제 재미가 있어지려는 2년이 지나고
많은 만남들과 늘 산책하던 길들과 놀러 다니던 고속도로들과 사랑스런 차와 뭐 별로 정은 안들었지만 수수한 기숙사를 놔두고 맨날 남들 배웅해주던 히스로공항 4 터미널을 통해서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2년만에 정이 든 곳을 떠나면서 마음 한 구석이 싸아- 하게 아팠답니다.
잠깐 살게된 한국
영국에서 달랑 2년만 보냈기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뭐 별로 달라진게 있겠어?'
등등의 생각을 했었지만 한국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2003년 다시 산본 6단지 집으로 돌아왔지만 느릿느릿한 영국에서의 2년은 지오가족을 바보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지오는 불완전한 한국어와 영국식 인간관계로 헤매기 시작했고,
지오엄마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되는 서울 살림에 정신이 없었고,
지오 아빠는 2년만에 회사 생활하느라고 온 몸이 스트레스로 짓이겨졌습니다.
그렇지만 전화 한 통이면 달려오는 중국집, 영어 안해도 잘 되는 의사소통, 핑핑 나는 인터넷 생활이 다시 기쁨을 몰아다 주었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지겹지만 편한 한국생활이 다시 시작된 거죠
쭝또이 송 어~ 탄포 호치민
그렇지만서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라 하는 지오네 가족을 잘 아시는 주님은 새로운 기회를 주시게 됩니다.
지오아빠는 영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지 한 달 반만에 다시 비행기를 잡아타고 영국가기 전에 했던 베트남 사업을 하기 위해 베트남 호치민시로 날아옵니다.
지오와 지오엄마도 지난 영국생활 덕에 이제는 익숙해진 폼으로 짐을 꾸려서 2003년 11월에 베트남 탄손녓 공항에 도착을 합니다.
그래서 2003년 지오네 가족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호치민시 2구 안푸 소재 한 아파트에서 새로운 형태의 삶을 시작합니다.
호치민 도심으로 진출!!!
이제는 베트남 생활에 그럭저럭 익숙해질 만한 그 때쯤 지오아빠는 2006년도 업무계획을 작성하다가.
'허억~ 이렇게 일이 많다니'
라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차비도 아끼고 회사도 가까운 곳을 물색하던 중에 사이공 강가에 있는 이제는 점점 그 서비스가 나빠지는 2군의 아파트를 떠나서 호치민시내 한 가운데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누가 물어봐도 명실상부한 베트남 도심속의 삶을 살게 됩니다.
다시 한국으로
그러니까 총 7년 (영국+베트남)의 외국생활을 접고 지오네는 2007년 8월에 그리운 (지오에게는 약간 낯설은)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그 동안에 세월이 꽤 흘렀기 때문에 정신없는 다시 한 번 초기 한국 정착생활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뭐 7년 동안 이런저런 외국생활을 이어왔지만 다시 산본의 신도시 생활이 이어지는 가운데 늘 항상 적응을 잘 하는 지오네 가족은 한국에서의 노멀한 삶을 나름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지오도 이제는 인터내셔널 스쿨이 아닌 둔전초등학교를 다녔고,
지오엄마도 이마트와 동네 장마당에 슬슬 익숙해졌지요.
지오 아빠야 뭐 늘상 그렇듯이 회사엘 출퇴근했습니다.
두바이라고 들어는 봤나?
2008년부터 지오아빠는 회사에서 중동 사업을 시작했고,
이 결과(?)로 지오네 가족은 2009년 1월부터 다시 짐을 꾸려가지고 모래가 풀풀 날리는 두바이에 도착을 합니다.
뭐랄까 다시 리프레쉬(refresh)하는 그러니까 세 번째의 외국 생활을 두바이에서 시작한 지오네는 한국+베트남+영국의 색을 가지고 다시 중동의 색을 입히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오 아빠는 두바이와 이라크를 오가는 생활을 시작했고,
지오 엄마는 소위 두바이 스타일 쇼핑에 적응을 시작했고,
지오는 머리 저기 한 구석에 넣어두었던 영어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년이나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지오네의 중동 생활은 장장 5년이나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오네가 한 곳에 머문 곳 중에 정작 두바이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머문 곳이 됩니다.
백 투 더 사이공
두바이에 5년이나 지냈기 때문에
'이제 대충 한국으로 들어가지 않겠어?'
하는 마음을 먹은 지오네 가족에게 하나님은
'외국엘 한 번 더 가보지?'
하시면서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이리하여 지오 아빠는 이전에 살던 베트남으로 다시 발령이 나고,
이제는 짐싸는데 너무나 익숙한 지오네 가족은 두바이에서 척척 짐을 꾸려서 ,
2014년 1월 베트남 호치민시 1군에 다시 자리를 잡습니다.
심지어 사는 곳도 베트남을 떠날 적에 살던 바로 그 아파트랍니다.
베트남과 영국 사이
지오 아빠는 생각합니다.
'아마도 지오 평생을 여기저기 끌고다녔기 때문이다'
라고 말이죠.
무슨 소리냐 하면 2016년 베트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오는 저렴한 비용으로 대학교 공부를 시키려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척 하고 냉큼 영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납니다. (아버지 월급을 과대평가하다니~)
이 결과로 그 동안 세 명이서 비비적 거리면서 살던 지오네 가족의 삶은
두 곳 그러니까 지오아빠와 엄마는 베트남에서 나머지 한 명 그러니까 지오는 영국에서 사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뭐, 방학이면 지오는 집으로 오지만 뭐랄까 여행을 가도 그렇고 집에서 빈둥대도 그렇고 새로운 삶의 챕터같은 느낌입니다.
U Town과 영국 사이
그러니까 2009년에 한국을 떠나서 두바이와 호치민을 전전한 지오네는 2018년 여름에 짐들을 슥슥 꾸려서
정든 호치민 거리들을 떠나서 지오 아빠네 회사가 있는 U Town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뭐랄까 우리 나라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난생 처음으로 살아보는 도시는 말만 통하는 외국같은 느낌이었죠..
지오는 그대로 영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가끔 U Town으로 놀러오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오 아빠와 엄마 둘 다 처음으로 겪는 지방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되었죠.
백 투 더 서울
뭐 세상 사는 것은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네네, 다 주님의 계획하에...)
철없은 혹은 무모한 지오 아빠는 그 나이를 먹고서도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는 선택을 했고,
덕분에 지오네는 서울로 입성을 합니다.
아, 그러니까 지오네 가족이 시작된 이 도시로 돌아오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입니다. 네네.
지오 아부지는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고 헥헥 거리고,
지오 엄마는 아주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 적응을 하고 있고,
지오는 뭐 영국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답니다.
그리고 한 명이 추가되고...
이 블로그에 놀러오시는 분들은 아마도 눈치 채셨을 수 있으셨겠지만, 지오는 여자친구가 고등학교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떠들석 하던 어느 맑은 봄 날 이 여자친구는 지오네 식구가 됩니다.
코로나 상황 덕분에 인터넷으로만 결혼식을 함께했지만 새 가족이 지오네에 join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오 아빠와 엄마는 서울에서, 지오와 크세니아는 영국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서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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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이 블로그는 현재 서울에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순수한 html 구문만으로 만들었던 지오네 홈페이지는 cgi게시판 시기를 통과해서
이제는 블로그로 그 모양을 바꾸고 이 가족의 기록을 해내고 있습니다.
블로그의 역사가 변한 것 처럼 지오네의 삶도 이런저런 모양으로 변하고, 또 몇몇은 변하지 않고 늘상 흘러가겠지요.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만들고 담아낼 예정입니다.
(네네, 게으름병이 있어서 자주라고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지만서도요)